세상은 언제나 일요일은 아니지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 호어스트 에버스 / 좋은책만들기
Die Welt ist nicht immer Freitag / Horst Evers / Eichborn AG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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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호어스트야. 지금 피자집에 전화 좀 걸어줄 수 있어?"
"왜 직접 안하고?"
"내가 하면 늘 살라미 피자만 시키게 되거든. 지겨워서 그래.
네가 다른 피자를 골라 주문해 주면 긴장 속에서 기다릴 만한
이벤트가 될 거 같아서."
...
옛날, 아직 동물영화다운 동물영화가 있던 시절.
오래도록 카메라는 예를 들어 영양을, 산에 그저 서 있을 따름인 영양을
비춘다. 2,3,4,5분, 혹은 더 길게 오로지 영양만을. 이어서 "영양입니다" 하는
나레이션. 그리고 또 잠잠. 영양이 뻣뻣한 동작으로 산비탈에서 움직이기
시작할때까지 시청자는 꾸벅꾸벅 존다.
"영양은 능숙하고 기민하게 산비탈을 이동합니다."
잠시 후 영양이 풀을 뜯기 시작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
이번에는 산 위 초원에 있는 마멋 한 마리를 비춘다.
"마멋,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와, 멋지군!' 생각하며 기분좋게 잠으로 빠져들어
우리의 미래를 꿈꾸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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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독일 작가의 꽁트집이라고 해야할까요.
매주마다 극장식당에서 발표한다는 작은 소품들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이 책은 간접경험이 주는 교훈이나 건강성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죠...
먹고사는데 절박함을 느끼지 않고
육체적인 게으름과 권태에 허우적대면서
가십거리와도 같은 지적 유희를 끼리끼리 즐기면서
소일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또는 그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이책에 다소나마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유사한 나태함의 경험과, (거의 쓸모없는) 지적유희의
경험에 비롯한 것입니다.
뭔가 감동이나 교훈, 깊은 여운을 기대하는 진지한 독자들을 충분히
실망시키는 이런 류의 책은
일상의 반복에 카페과 니코틴으로 치료를 반복하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어울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무쓸모한 책같이 소개되었지만...
편하게 지하철 같은데서 꽁트집 한권 읽는 기분으로 접한다면
반드시 누군가 한두사람쯤은 '나만큼 게으른 사람이 저 멀리 독일에도 있구나!!'
하는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할수 있을듯 싶네요. :)